Accumulation

PARK SUK WON

2024-06-01 ~ 2024-07-10


자연의 내재율을 쌓다


[accumulation-일련번호]로 붙여진 박석원의 시리즈 작품은 캔버스 위에 한지를 붙인 평면으로, 그의 주요 조각 작품들처럼 ‘쌓는다’는 개념이 깔려 있다. 평면작업에서 쌓기는 우선 캔버스 위에 종이를 (붙여서)쌓는다는 물리적인 의미가 있고, 붙여진 종이들끼리도 쌓기라는 관계를 가진다. 수평선을 떠올리는 평행 방향의 배열을 포함해서, 여러 조합의 구성이 있다. 그의 평면 작업은 수직적으로 수평적으로 쌓이는 것이다. 박석원의 ‘쌓기’는 회화보다 더 중력의 지배를 받는 조각 작업에서 먼저 시작됐지만, 3차원과 2차원 간의 연동은 절묘하다. 같은 양식의 제목은 양자의 연속성을 암시한다. 고양시 외곽의 작업실에는 색색의 한지들이 쌓여있다. 그의 작업에 쌓기라는 개념이 있기에 더욱 그렇지만, 잘 생산된 제품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처럼 그자체로 감탄할 만한 부분이 있다. 따지 않은 한 통의 물감 그대로가 좋다고 한 개념미술가도 있지 않나.
그래서 그 미술가는 작업 대신에 이런저런 미학적 언명, 즉 개념 그 자체를 작품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작가란 주어진 것 이상의 무엇을 해내야 하는 이다. 대화 내내 작업, 노동 등을 자주 말하고 강조했던 박석원에게 물질적 재료와 맞부딪혀 행위하는 몸은 관념보다 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평면 작품의 경우 캔버스라는 바탕 면은 거의 고정되어 있기에, 어떤 색의 한지를 쓰는가에 따라 작품의 전체적 색감이 달라진다. 캔버스의 색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한지부터 진한 색까지 캔버스에 추가되는 종이는 물감인 셈이다. 인사동 등에서 구입하는 수제한지는 공산품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며 손수 찢는 작업이기에 완전한 반복은 없다. 한 작품에 한색의 한지만 쓰고 여기에 미세하게 가필을 한 화면은 전체적으로 모노크롬 분위기다. 한지를 붙인 화면에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듯 가늘게 첨가한 선들은 자연의 내재율을 떠올린다. 가는 선들은 여러 진폭을 가지는 띠로 이루어진 화면에 추가된다.
그가 쓰는 전형적인 조각적 재료에 비해 얇고 가볍고 부드러운 이 재료를 강화하기 위해 가는 철선이나 실로 보충한 듯한 효과다. 찢어내어 가장자리가 자연스럽게 풀린 한지를 캔버스에 완전히 밀착시키기 때문에, 그의 ‘물감’은 두텁지 않다. 붙인 한지 사이사이로 화면에 날 것으로 드러나는 캔버스는 그의 3차원 작품처럼 자연을 품는다. 그것들은 숨구멍같은, 바람길 같은 여백으로 나타난다. 가령 그의 작품 중 용접으로 만들어진 투각 기둥 형태는 작품 전체에 불규칙적인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조각작품에서 일정한 크기로 잘려진 돌의 가장자리도 자연스럽게 남겨둔다. 그렇게 함으로서 재료의 물성도 살리며, 의미있는 형태를 재료에 관철하는 조각가의 의지도 실현한다. 이러한 과정은 평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미술사에서 화면의 평면성을 확인하는 절차로 인증받은 입체파의 파피에 꼴레처럼, 캔버스에 찰싹 붙여진 종이는 평면의 조건을 재확인한다.
회화는 더 이상 이전 시대처럼 세상을 들여다보는 창이나 거울이 아닌, 자체의 규칙에 지배된다. 그렇게 자율화된 화면에서 현대미술에 대한 많은 개념이 파생되었다. 다소간 얼마간은 평평한 캔버스가 창조적이거나 생산적인 토대였던 셈이다. 하지만 그러한 평면은 곧 벽이 되어 버렸다. 기능이 없는 벽은 장식화되었다. 조각이나 평면이나 모두 깔끔한 마무리감이 있는 박석원의 작품은 추상미술가들이 초창기 때부터 고민했던 추상과 장식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표면적 아름다움을 넘어서 의미에 도달해야 하는 것이 장식과 구별되는 미술의 정체성이다. 형태 심리학자 루돌프 아른하임은 [미술과 시지각]에서 훌륭한 예술작품은 어떤 내용을 표현하고 해석하는데 봉사하지만, 장식은 그렇지 못하다고 말한다. ‘예술적 상상은 낡은 내용을 대신하는 새로운 형태의 발견이요, 또는 낡은 주제에 대한 참신한 개념’(아른하임)이다. (물론 의미를 전달하는 기능으로서의 예술에 대한 관념을 거부하는 입장도 있다.)
아른하임에 의하면 장식은 세상의 한 부분인데 반하여 예술작품은 이 세상의 한 이미지이다. 그에 의하면 예술작품은 먼저 세상으로부터 뚜렷이 분리되어야 하고 다음으로 세상의 전체 특징을 드러내야 한다. 박석원의 작품은 형태심리학이 가정하는 ‘분리’라는 점을 확실히 한다. 그것은 그의 작품이 ‘사물의 편’(프랑시스 퐁주)이 아닌 예술의 편에 속해 있음을 말한다. 현대미술의 한 축이 예술을 지양하고 사물을 지향하면서 사물화 되어가는 경향이 있다면, 박석원의 작품은 그것이 속한 주변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예술의 질적 기준을 갖추려 한다. 한편 그의 작품 형식은 단순한 요소의 반복이라는 점에서 장식적 특성을 공유한다는 점도 인정돼야 한다. 하지만 그의 작품의 추상적 속성은 장식과 달리 ‘통일된 인지 과정의 근본 성질’과 관련된다. 통일된 인지란 ‘그가 하는 모든 일에 자기 정신력의 통합된 전체를 적용할 때’(아른하임) 가능하다면, 그의 작품 또한 한눈에 들어오는 통일성을 가진다.
추상미술이라고 해서 환영(幻影)이 완전히 배제되는 것이 아니다. 평면 작품의 경우, 선택된 한지의 색감에 따라 관객의 상상력은 백자부터 바다까지 다양한 차원으로 이동한다. 평면에 붙여진 또 다른 평면인 한지는 원재료인 닥나무 섬유질이 자연스럽게 풀려 있어서, 붓질로 친다면 회화적이다. 일정 간격을 둔 줄로 평행하게 붙여 만들어진 수평선은 작품마다 다양한 파동으로 잔잔하게 출렁인다. 박석원의 작품은 기하학과 자연스러움이 공존한다. 한지가 교차로 붙여진 작품들은 촘촘한 섬유같은 짜임새가 특징이다. 십자형의 여백 때문에 창같은 효과를 주는 작품도 있다. 평면 시리즈에서 변주는 조각보다 자유롭다. 돌과 금속, 나무 등을 교차로 쌓아 올린 [적의積意] 시리즈는 1980년 전후로 시작되었으며, 민간 풍습에서의 돌탑 쌓기와 비유되어 해석되곤 했다. 그의 작품은 조각의 수직적 기념비성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 작품의 물리적 무게감이나 견고함과 별개로, 통상적인 기념비 스타일의 조각작품보다 융통성 있다.
고인돌같은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라, 그 내부에서 관계와 흐름을 만들어 낸다. 요컨대 그의 작품은 구성적이다. 조각의 경우 구축적이다. 작가가 확정한 단위들을 조합한 작품이다. 구성, 구축, 구조 등 가족 유사성을 가지는 개념들은 현대의 과학적 방법론과 연결된다. 과학은 본질보다는 관계를 강조한다. 무엇인가 구축된 것이라 함은 해체의 가능성도 포함한다. 벵상 데콩브는 [동일자와 타자]에서 ‘해체’라는 단어는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에서 언급된 ‘Destruktion’를 번역하기 위해 데리다에 의해 최초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닌(전복시키다) 긍정적 의미로(경계를 정하다) 이해된다고 말한다. 중력을 거스르지 않고 어떻게 쌓였는지가 직관적으로 알게 되는 박석원의 조각은 해체와 구조의 연동성을 알려준다. 그의 작업실에는 전시장에서 다시 순차적으로 조립될 구성 요소들이 질서 있게 쌓여있다. [시각적 사고]에 의하면 관계는 구조에 의존하며, 본다는 것이 세부 내용의 무분별한 기록에 있지 않고 구조 특성의 파악에 있다.
다양한 현상의 흐름 가운데서 구조적 특징, 즉 상대적으로 안정적 구조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재현적 대상에 의지하지 않고도 그것이 가능할까. 철학에서의 구성주의는 가능하다고 본다. 지크프리트 슈미트가 편집한 [구성주의]에 의하면, 구성주의는 존재보다는 인지적인 것을 강조한다. 구성주의적 사고에 의하면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은 존재론적인 현실이 아니라, 우리가 결정한 합의에 근거한다. 구성주의의 맥락에서 해석은 어디에선가 쪼갠 조각들을 다시 가져와서 조립하는 가운데 생긴다. 박석원의 구성적 작품에는 현실이 재현되어 있지 않지만, 작가가 채택한 적절한 구성적 요소로 인해 안정된 세계상을 구축할 수 있다. 그가 고수해 온 재료를 자르고 쌓는 방식은 주체가 대상에 정신적 육체적 작용을 통해 적극적으로 무엇인가를 구축함을 말한다. 건축처럼 인공적이지만, 돌의 가장자리를 자연스럽게 남겨 놓는 등, 자연과 협업한다.
평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돌의 돌다움, 금속의 금속다움, 나무의 나무다움을 부정하지 않는다. 평면 작품에서 사용되는 한지도 자연적 소재에 속한다. 단순한 요소를 반복하는 그의 작업은 미니멀리즘과 연결된다. 하지만 작가는 자기 작품이 미니멀리즘과 갈라지는 지점이 이러한 자연스러운 부분이라고 말한다. 미술사에서의 미니멀리즘은 휴머니즘의 전통을 거부하며 미술작품보다는 연극의 무대로 확장되고, 결국은 예술을 지양한다. 박석원의 작품은 일정 간격으로 분절화되어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인간과 마주 서 있다는 점에서 연극성과 거리가 있다. 그의 작품에서 추상적 형태의 반복은 기존의 재현주의에 기대지 않는다. 대상과 동일한 무엇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나타낸다. 벵상 데콩브는 [동일자와 타자]에서 반복은 동일자의 귀환이나 동일한 것의 되풀이가 아니라, 차이의 생산(존재하게 하다, 보여주다라는 두 가지 의미에서)과 관련된다고 말한다.
현대철학에서 강조되는 반복과 차이는 무엇보다도 재현주의를 거부한다. 물론 추상미술도 본질이나 구조를 강조하다 보면 재현주의에 가까워질 수 있다. 가령 이상적 형태에 대한 플라톤적 관념을 재현하는 것이 그렇다. 다행히 신체와 물질이 맞부딪히는 조각 예술은 재현적 관념이 일관성 있게 관철되기 힘들다. 박석원은 1969년부터 한국 아방가르드 협회(AG)의 창립 멤버로, 1975년부터 ‘에꼴 드 서울’ 전에 참여하면서 한국 현대미술 운동에 참여했다. 첫개인전은 1974년에 했다. 1942년생으로, 한국 전쟁 후의 피폐한 시기에 청년기를 보낸 작가는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폐허에서 시작한 세대에 속한다. 미술사에서도 세계대전의 폐허와 추상미술의 관계가 언급된다. 재현할 만한 가치도 대상도 없는 전무후무한 세계가 열린 것이다. 1960년대에 미술대학을 다니던 그는 ‘대학생들이 경찰 노릇까지 했던’ 정치적 혼란기를 통과했다.
1960년대 서구는 이성의 질서에 대한 거부감이 팽배한 반(反)문화가 유행했지만, 한국의 경우 건설, 생산, 질서 등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있었다. 작업은 논리보다는 행위라고 보며, 자신은 작업에 정신을 쏟았다고 본다. 관념이 앞서기보다는 작업을 통해 깨우쳐 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다루기 힘든 재료를 사용하는 작업이다 보니, 작품이란 역경을 이겨내는 인내와 수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이 ‘보여지는 현상을 내 에너지로 밀어내고 다시 내 쪽으로 끌어내는 행동’과 비유한다. 그것은 이성과 노동을 통해 주어진 자연을 변형시키는 주체의 면모이다. 자연적 재료를 자신의 방식으로 잘라내고 다시 붙이는 것이다. 그의 구축 방법은 반복이다. 작가는 이에 대해 ‘본질은 같고 현상은 다르게’, ‘무한히 거듭한다’고 말한다. 반복의 조건은 단순함이다. 박석원의 작품에는 단순함이 공통적인데, 그 바탕에는 기하학보다는 자연이 있다.
‘불필요한 것을 행하지 않는’ 자연은 ‘단순에 만족하며 필요 이상의 과잉을 유발하지 않기 때문’(뉴턴)이다. 루돌프 아른하임은 [미술과 시지각]에서 단순성이란 의미와 가시적 패턴 사이의 구조적인 일치성이라고 말한다. 그러한 구조적 일치성이 동형성(isomorphism)이다. 자연이든 인생이든 예술이든 본질적인 구조가 중요한 것은 그에게도 마찬가지다. 종이 또한 돌이나 나무처럼 절삭을 통해 반복적 관계를 재생한다. ‘바벨탑을 쌓듯이’. 또는 ‘되새김질하듯 끝없이 연마’하는 중첩의 과정에서 의미와 가치가 생겨난다. 최근 여러 전시에서 발표되는 평면작업은 조각만큼이나 그에게 친숙하다. 독학으로 뒤늦게 미대 입시 준비를 시작했던 그는 회화과 지망이 좌절되고, 2지망으로 조각과에 합격했다. 하지만 조각과에서 흙 작업을 하는 순간, 앞이 바다고 뒤가 산인 고향에서 흙장난으로 보낸 어린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나 조각을 숙명으로 여기고 조각과를 계속 다녔다고 한다.
교육체제가 제대로 정비되지 못했던 시절, 종일 산과 바다를 보고 하루를 보내곤 하던 자연과의 교감은 이후에도 그의 감성적 밑천이 되어준 셈이다. 미술대전에서 수상하며 박석원을 ‘공식 무대’에 처음 알린 작품 [초토焦土](1967)는 육중한 금속조각이지만, 마치 공중에 붓으로 힘차게 점을 찍은 듯한 궤적으로, 조각에만 한정되지 않았던 그의 예술적 이력을 보여준다. 입체든 평면이든 자연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리듬과 흐름에 상응하는 것을 생산한다. 90년대 초에 홍익대 조소과에 재직하면서 동료이자 스승이기도 했던 이일(1932-1997) 선생과의 만남도 중요하다. 한국 추상미술의 이론적 지주였던 이일 선생은 그의 전시 평문을 집필해 주기도 했다. 이일 선생이 주장한 ‘환원과 확산’의 미학은 그의 작품 해석에도 설득력 있으며, 역으로 이일 선생의 비평적 관점에 대화적으로 상호작용했을 것이다. 핵심적인 형태소로의 환원은 마치 언어처럼 다양한 의미로 확산될 수 있다. 박석원의 작품에서 환원과 확산은 이항대립이 아니라 서로를 포함하는 관계다.

이선영 미술평론가


Accumulating the Internal Rhythms of Nature

The serial works of Park Sukwon, identified by [accumulation-serial number], consist of flat surfaces where hanji (traditional Korean paper) is adhered to the canvas. This approach reflects the concept of “accumulation,” similar to his major sculptural pieces. In his two-dimensional artworks, the process of accumulating involves physically layering the paper onto the canvas through attachment. Moreover, the attached paper pieces also establish an accumulation relationship among themselves. There are diverse compositional arrangements in his works, including parallel alignments reminiscent of the horizon. His flat artworks involve tasks of vertical and horizontal accumulation. Although his “accumulation” concept originated with his gravity-influenced sculptural pieces, the relationship between three-dimensional and two-dimensional spaces is exquisitely maintained. The titles in the same style suggest continuity between the works with two different dimensions. In his atelier on the outskirts of Goyang City, stacks of colorful hanji are a common sight. This accumulation is considered simply integral to his work, but there is also something inherently admirable about well-crafted materials, akin to nature. It recalls a conceptual artist's remark that an unopened tube of paint is perfect in itself.
For this reason, this same conceptual artist offers various aesthetic statements or concepts as art itself, rather than producing conventional works. However, an artist is expected to achieve more than what is readily available. For Park Sukwon, who consistently emphasized the significance of creative work and labor, the body conducting physical engagement with materials holds more importance than the concepts alone. When it comes to his flat works, the canvas surface remains almost static, so the overall color of the artwork tends to vary depending on the color of the hanji used. The hanji applied to the canvas, with hues ranging from similar to the canvas's original color to much darker shades, essentially functions as paint. The handmade hanji bought from places like Insadong is not mass-produced. Additionally, since it is torn by hand, no two pieces are duplicated. When a single color of hanji is used in a work and subtly adjusted, the canvas creates an overall monochromatic effect. The thin lines with vague visibility covered with hanji evoke the internal rhythms of nature. These delicate lines are added to the canvas, creating bands with varying amplitudes.
Unlike the typical sculptural materials he usually uses, this thin, light, and soft material is reinforced with fine wire or thread to enhance its effect. His “paint” does not appear thick, as he entirely adheres the torn hanji, with its naturally frayed edges, to the canvas. The canvas, left exposed between the attached pieces of hanji, embraces nature similarly to his three-dimensional works. These exposed sections resemble breathing spaces or wind paths. For example, some of his works feature openwork column forms with irregular holes created by welding. In his sculptures, the artist keeps the edges of stones, cut to a specific size, as natural as possible. In this way, Park Sukwon not only highlights the inherent qualities of the material but also achieves his artistic will of imbuing the material with meaningful forms. A similar process occurs in his flat works. Like the papier collé technique practiced by the Cubists, known in art history for confirming the flatness of the plane, the paper attached to the canvas seeks to reaffirm this flatness.
Painting, no longer solely a window or mirror reflecting the world as in past eras, now follows its own set of principles. This autonomous canvas has been a source of diverse concepts in contemporary art. At times, the flat canvas served as a creative or productive foundation. However, this flatness eventually evolved into a wall, devoid of function, and adorned purely for decoration. Whether sculptural or flat, Park Sukwon's works showcase a distinct finish, prompting reflection on the interplay between abstraction and ornamentation, a deep concern of abstract artists from their inception. Art's identity, distinct from mere decoration, resides in surpassing superficial beauty to attain significance. Rudolf Arnheim, a Gestalt psychologist, asserts in his book Art and Visual Perception that significant works of art express and interpret content, whereas decoration does not. He argues that artistic imagination involves uncovering novel forms to replace outdated content or introducing innovative concepts for antiquated themes. (However, some viewpoints want to reject the idea of art serving as a conduit for conveying meaning.)
According to Arnheim, decoration is a component of the world, whereas artwork represents an image of this world. Thus, artwork needs to be clearly separate from the world and then illustrate the general traits of the world. Park Sukwon's works underscore this idea of “separation” posited by Gestalt psychology. This suggests that Park Sukwon's works align more with the realm of art rather than “the voice of things” as described by Francis Ponge. While one axis of contemporary art frequently leans towards objectification, prioritizing the object itself, Park Sukwon's works aim to set qualitative standards for art that are clearly separate from the surroundings to which they belong. On the contrary, it’s important to recognize that his works exhibit decorative qualities through the repetition of simple elements. However, their abstract nature is linked to the “fundamental nature of unified cognitive processes,” distinguishing them from typical decoration. In this context, unified cognition shows its influence when applying one's integrated mental capacity to all actions (Arnheim). Consequently, his works also display a unified characteristic that is immediately noticeable.
Even within abstract art, illusion is not entirely excluded. In the context of flat works, the chosen shades of hanji can evoke diverse dimensions in the viewer's imagination, ranging from porcelain to the sea. Another flat surface attached to the canvas, crafted from raw mulberry fiber, blends naturally, embodying painterly features when compared to brushstrokes. In each artwork, horizontally parallel lines are formed by attaching lines at regular intervals, softly undulating with diverse waves. Park Sukwon's pieces embody a harmony between geometry and natural fluidity. Works featuring hanji cross-adhered are characterized by their dense, fibrous texture. Certain works featuring cross-shaped spaces evoke a window-like impression. In his flat series, there is more freedom in variations compared to his sculptures. Beginning around 1980, he initiated the [Accumulation] series, in which stones, metals, and wood are stacked in a crosswise manner. These works have been interpreted as metaphorical representations of the stacking of stone towers found in folk customs. His artworks display the vertical, monument-like quality often associated with sculpture, yet they demonstrate greater flexibility compared to traditional monumental sculptures, irrespective of their physical weight or solidity.
Rather than being singular, monolithic structures like dolmens, his works establish internal relationships and flows. In essence, his works are constructive. In particular, his sculpture is tectonic. His artistic pieces consist of units defined by himself. Concepts like composition, construction, and structure are linked to modern scientific methodologies, which prioritize relationships over essence. Something constructed also implies the possibility of deconstruction. Vincent Descombes, in Le même et l'autre, explains that the term “deconstruction” was initially employed by Derrida to translate Heidegger's term “Destruktion” from the book Being and Time. He argues that "deconstruction” should be interpreted positively (as defining boundaries) rather than negatively (as overthrowing). Park Sukwon's sculptures, which intuitively display how they are stacked without defying gravity, illustrate the link between deconstruction and structure. In his atelier, components are neatly organized, awaiting sequential assembly for exhibitions. According to Visual Thinking, relationships fundamentally rely on structure, and the essence of seeing lies not in indiscriminately recording detailed content but in discerning the traits of a structure.
This suggests that identifying structural characteristics or relatively stable structures within a range of phenomena is crucial. However, can this be done without relying on a representational object? Philosophical constructivism asserts that it is possible. As discussed in Constructivism, edited by Siegfried Schmidt, this perspective focuses more on the cognitive aspects rather than the existential ones. In constructivist theory, what we consider reality is not rooted in an ontological reality but is instead shaped by agreements we establish. Within this framework, interpretation involves gathering and reassembling diverse fragments taken from somewhere. In Park Sukwon's constructive works, reality is not representational; instead, a stable world is created using the artist's chosen constructive elements. His usual technique of cutting and stacking materials symbolizes the active construction of something through the subject's mental and physical interaction with the object. Although his work is artificial, like architecture, it harmoniously collaborates with nature by preserving the natural appearance of the stone edges.
The same principles are evident in his flat works. The artist embraces the inherent qualities of the original materials, such as the “stoneness” of stone, the “metalness” of metal, and the “woodness” of wood. Similarly, the hanji used in his flat pieces is also a natural material. His work, characterized by the repetition of simple elements, is associated with minimalism. Nevertheless, Park Sukwon contends that the distinction between his work and minimalism is rooted in these natural qualities. In art history, minimalism rejects the tradition of humanism, extending beyond artworks to theater, and ultimately distances itself from art. His work, though segmented at regular intervals, still avoids theatrical elements by engaging directly with humanity. The repetition of abstract forms in his art does not depend on traditional representationalism. It does not show the same thing as the object but instead highlights the difference. In Le même et l'autre, Vincent Descombes argues that repetition is not about the return or recurrence of the same, but rather it is related to the production of difference (in both the sense of bringing something into existence and revealing it).
Repetition and difference, as underlined in contemporary philosophy, primarily reject representationalism. However, abstract art can still verge on representationalism when it accentuates essence or structure, such as in the representation of Platonic ideal forms. Fortunately, sculptural art, which engages both the body and material, inherently struggles to consistently maintain a representational concept. As a founding member of the Avant-Garde Association since 1969, Park Sukwon has actively contributed to the Korean contemporary art movement, participating in the "École de Seoul" exhibitions starting in 1975. His first solo exhibition took place in 1974. Born in 1942, Park Sukwon underwent the turbulent aftermath of the Korean War. His generation started amid the ruins and widespread devastation. In art history, there is often a connection drawn between the consequences of World War II and the emergence of abstract art. A world with unprecedented possibilities, devoid of any value or object worthy of representation, had emerged. As an art school student in the 1960s, he witnessed the political upheaval of an era when “college students even took on the role of the police.”
Despite the widespread counterculture of the 1960s in the West, characterized by a rejection of rational order, Korea faced societal pressures for construction, productivity, and order, presenting a contrasting scenario. Work was perceived more as an act rather than logic, and Park Sukwon identified himself as a passionate soul dedicated to his craft. The emphasis lies on the journey of awakening through the artistic work, esteeming it over situations where concepts take precedence. Wrestling with demanding materials led him to realize that artworks require patience and self-discipline to overcome obstacles. Metaphorically, Park Sukwon describes his work as “a process of pushing out the phenomenon seen with my own energy and then drawing it back towards myself.”This pertains to the main agent altering the inherent nature through rationality and hard work (labor). It is about cutting and rearranging natural materials according to his own manner. His approach to construction involves repetition. The artist characterizes it as “maintaining the core essence while manifesting varied phenomena,” and “incessantly repeating.” The condition of repetition is in simplicity. Within his creations, simplicity is prevalent, with nature taking precedence over geometric forms.
This stems from the idea that nature, following the principle of “doing nothing in vain,” finds “contentment in simplicity without unnecessary excess,” as Newton suggests. Moreover, Rudolf Arnheim, in Art and Visual Perception, defines simplicity as the structural consistency between significance and visible patterns. This structural consistency refers to isomorphism. For Park Sukwon, whether in nature, life, or art, the fundamental structure holds significance. Similar to stone or wood, paper reproduces repetitive connections through cutting. Significance and value manifest through repetition, akin to "constructing the Tower of Babel" or "unceasingly polishing like ruminating." The flat artworks showcased in his recent exhibitions hold as much familiarity for him as his sculptural pieces. He started preparing for art school entrance exams later than most, relying on self-study. Despite initially aspiring to pursue painting, which resulted in frustration, he was admitted to the sculpture department as his second preference. Upon immersing himself in clay within the sculpture department, memories of his childhood, spent playing with soil in his coastal hometown surrounded by the mountains, flooded back to him. Consequently, he viewed sculpture as his predetermined path and remained committed to his major in sculpture.
Amidst an education system characterized by inadequacies in organization, spending days gazing at the mountains and the sea became a foundational wellspring of sensibilities, inspiring his artwork through a deep connection with nature. Park Sukwon gained public recognition with his sculptural piece “Scorched Earth,” which earned him an award at an art competition. Crafted from substantial metal, it evokes the energetic strokes of a brush, appearing as if painted vigorously in mid-air. This artwork exemplifies his artistic journey, transcending the boundaries of sculpture. He doesn't create a mere reproduction (representation) of nature, whether in three dimensions or on a two-dimensional surface, but rather something that aligns with the natural rhythm and flow. His connection with Lee Il (1932-1997) is significant as well. Lee is regarded as both a colleague and a former professor during his tenure at the Sculpture Department of Hongik University in the early 1990s. Lee Il, a theoretical pillar in Korean abstract art theory, even penned a critique for one of Park Sukwon's exhibitions. Lee's aesthetic principle of “reduction and diffusion” provides a compelling lens through which to understand Park Sukwon’s artworks. Similarly, Park Sukwon’s creations likely engaged in a fruitful dialogue with Lee critical perspective. The reduction to core morphemes in Park Sukwon's artworks can expand into multifarious meanings akin to language. In his art, reduction and diffusion do not stand as binary oppositions but rather exist in a symbiotic relationship of mutual embrace.


Lee Seonyoung / Art crit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