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빛의 마음: 한국 모더니즘 회화의 재구성
Ⅰ. 모더니티의 조건
이번 전시회의 제목은 규정하기 까다로운 여러 의미로 중첩되어 있다. 주제에 ‘희다’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미술 속 화이트에는 한자 ‘소(素)’를 포함해야만 그 의미가 통하게 된다. 화이트에는 희다는 지각의 상황을 가리키지, 그 외의 뜻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소(素)’에는 ‘본디’, ‘바탕’, ‘꾸미거나 덧붙이지 아니한 것’, ‘정성(精誠)’, ‘희다’, ‘질박하다’, ‘분수를 지키다’ 등 뜻의 범위가 훨씬 넓고 용례가 다양하다. 진정 영단어 ‘화이트’라는 한 단어로 로버트 라이먼(Robert Ryman, 1930-2019)의 세계를 규정할 수 있을지언정 한국 작가들의 세계를 모두 규정할 수는 없다. 한국 모더니스트 회화가들의 흰색의 세계는 색과 물성이 지니는 지각을 넘어, 훨씬 다층적이고 유동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모더니즘의 의미에 대하여 분명하게 되짚어가야 한다. [옥스퍼드 영어사전 온라인]에서는 영어 ‘modern’의 첫 번째 의미로서 “현재와 최근에 지속되는 것을 가리키며 떨어진 과거와 구별되는 것이다. 현시대 혹은 현재 시기를 유지하거나 현시대에서 비롯된 것을 말한다.”라고 정의한다.(2.a.) 두 번째 의미는 응용된 뜻으로서, “예술과 건축의 운동이거나 그 운동으로부터 파생된 작품을 뜻한다. 그것은 기성과 전통 양식과 가치를 거부하면서 출발한 것이라고 규정될 수 있다.”라고 정의한다.(2.h.) 널리 알려진 것처럼 ‘modern’이라는 말은 6세기에 사용되었던 라틴어 ‘modo’에서 나왔으며, 그 뜻은 ‘바로 지금(just now)’을 의미한다. 이 말은 ‘오늘날의(of today)’라는 뜻을 지닌 단어 ‘hodiernus’와 합쳐져 ‘modernus’가 되었으며, 지금 우리가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쓰는 ‘modern’이라는 말이 되었다. 따라서 ‘modern’은 동아시아의 용어로 17ㆍ8세기를 가리키는 근대(近代)나 20세기, 21세기를 가리키는 현대(現代) 모두를 가리킨다. (학자에 따라서 포스트모던이라는 개념은 실패한 개념으로 규정되기도 한다.) 다만, 동시대를 뜻하는 컨템퍼러리(contemporary)라는 용어가 예술과 만날 때에는, 아방가르드의 급진적 성격이나 시간상으로 가장 현재와 가까운, 말하자면 시간의 업데이트를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컨템퍼러리 예술과 모더니티 예술을 구분해줄 수 있는 철학적 근거는 애매하다. 이에 대해 당대 최고의 예술철학자인 피터 오스본(Peter Osborne, 1958-)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개념미술은, 형식을 매개로 특권을 부여받을 수밖에 없는, 그리고 동시대 예술이 쟁취해내야 하는 의미와 가능성에 대한 경쟁과 관련되는, 이른바 회화주의(pictorialism)의 인가성에 대한 절대적인 반미학적 입장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다.……이런 면에서 ‘후기개념미술(post-conceptual art)’은 예술의 특정 형식을 지칭하는 이름이 아니다. 오히려 동시대 예술 일반의 생산에 대한 역사적, 존재론적 조건을 지칭하는 것이다.
윗글에서 피터 오스본은, 개념미술, 나아가 후기개념미술에 관하여 설명하면서, 이 둘은 형상적 예술(pictorialism) 일반에 대한 반발적 기류로서 나타난 현상으로서 동시대 작품 생산의 역사적 조건을 지칭하는 개념일 뿐이며, 그 외 다른 어떤 미적 형식이나 철학적 구분을 구유하는 개념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또 하나의 중요한 관점을 제시한 사람이 있다. 나이지리아 출신 큐레이터 오쿠이 엔위저(Okwui Enwezor, 1963-)가 유럽의 모더니티를 슈퍼모더니티(Supermodernity, 탁월성을 강조)로 지칭하고, 아시아의 모더니티를 앤드로모더니티(Andromodernity, 가부장적 질서를 강조)로 명명하며, 이슬람권의 모더니티를 스페시어스모더니티(Speciousmodernity, 허울뿐인 정책을 강조)로 설명한 후 아프리카 모더니티를 애프터모더니티(aftermodernity, 후발적 지위를 강조)라고 명명했다. 이는 각각 문화권이 지닌 모더니티 조건을 브랜드화한 것으로 음미해볼 가치가 있다. 오쿠이가 모더니티의 지역적 차이를 강조할수록, 오히려 모더니티의 본질은 불변하는 것이며, 모더니티는 여전히 문화에서 우세를 점하는 것은 물론 후기(post-), 대안(alter-), 반복(re-)과 같은 온갖 접두어의 개념을 포괄하면서 하위의 개념에 가둔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 모더니즘은 철학적으로 보았을 때도 여전히 끝나지 않았으며, 그것은 역사적ㆍ지역적 조건이라는 외투만을 바꾸어 입었을 뿐이다.
모더니즘과 모더니티에 대해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니며 가장 통찰력 있는 관점을 제시했던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 1965-)의 문장을 살펴보아도 문제의 핵심은 같다.
대안모더니즘(altermodernism)은 이시성(異時性, heterochrony)으로부터 출발하여 무언가를 산출할 수 있게 된 시기라고 정의할 수 있다. 즉, 인간의 역사가 복합적 시간성으로 구성된다는 시각으로서, 아방가르드에 대한 향수를 거절하면서도, 혼돈과 복잡성은 긍정하는 시각이다. 그것은 시간을 무한고리 속으로 가두어 석화(石化)시키는 속성(포스트모더니즘)도 아니며, 역사의 선형적 시각(모더니즘)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현재의 모든 차원을 탐험하며, 또 시공의 모든 방향의 선로를 좇는 예술형식을 통해서 드러나는, 지향성 없는 경험의 차원을 긍정하는 것이다.
니콜라 부리오 역시 대안모더니즘을 가리켜, 예술형식의 어떠한 속성이나 특수성으로 특정해서 파악하지 않는다. 니콜라 부리오는 대안모더니즘을 설명하면서, 예술형식의 시대성과 내적 발전도식을 긍정하는 모더니즘의 개념, 그리고 그것을 부정하며 태어난 포스트모더니즘은 무한고리 속에서 순환한다는 개념, 그 둘 사이 어디쯤인가에서 자기를 분명하게 표명해내지 못하는 역사적 징후 정도로 해석하는 데 그치고 있다. 학자들은 온갖 접두어를 붙여서 모더니티를 극복하고, 20세기 중반기의 예술현상과 그 후를 철학적으로 구분하고자 하지만, 그러한 노력이 더해질수록 오히려 모더니티의 가공(可恐)할 정신만이 두드러질 뿐이다. 그렇다면 모더니티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모더니티는 피안(other-worldly)의 가치를 지상 세계(this-worldly)의 관점 속에 가둔다. 초자연적 세계를 거부하며 신의 죽음을 선포하면서 형이상학적 가치를 세속화한다. 미국의 신문 「크로니클 오브 하이어 에듀케이션」은 모더니즘에 대해 알기 쉽게 정의한다. “모더니티의 주된 특징은 초월성에 대한 신념의 상실에 있다. 동시에 모더니티는 일상생활만을 감싸며 초월적 실체에 대한 신념으로부터 거리를 둔다.” 모더니티 이전의 세계관에서 가장 위대했던 것은 ‘가장 완벽한 존재(ens perfectissimum)’를 상정해낸 것이며, 또한 우주가 위계적 단계로 설정되어 있다는 관념을 형성해낸 사실에 있다. 근대 과학의 역사는, 그것이 신성한 성서보다도 실재에 대해서 훨씬 신뢰할만한 결과를 갖추고 있다고, 설득해온 여정이다. 과학은 근대적 믿음, 즉 모던 페이스(modern faith)라는 말과 같다. 모던 페이스는, 그동안 사람들이 중시했던 체계들, 가령 가치, 의미, 목적, 질, 비가시적인 것(invisible), 상위자(superiors) 등 수직적 차원의 체계에 대해 묵과하면서, 설명할 수 있는 세계만을 실체라고 규정했다. 모던 페이스는 결국 형이상학의 세속화에 다름 아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모더니티는 현재까지 여전히 유지되며 진행되는 프로젝트이다. 단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역사적 조건이 변화되었기 때문에 그 형식의 외양이 달라 보이더라도 근원적으로 모더니티의 정신은 변하지 않고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그렇다면 모던 페이스가 예술계는 어떻게 변모시켰는가? 모더니즘 예술이 지향하는 가치는 순혈주의에 있다. 순혈주의는 정통성(legitimacy)을 따진다. 정통성은 계보학(genealogy)에서의 적장자 계승(primogeniture succession)을 원칙으로 한다. 적장자 계승의 적법성에 대한 원칙과 근거는 매우 철학적이다. 모더니즘 예술은 본질주의(essentialism)라는 초점(focus)에 맞추어 세계를 본다. 본질주의란, 회화는 평면성(flatness)이라는 본질에 부합해야 한다는, 신조이다. 반대로 조각은 물질성(materiality)의 본질의 최종적 대답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모더니즘 예술은 본질주의에 의한 순혈의 적법성과 그것에 수반한 적자상속의 신화성을 연출해냈다. 모더니즘 예술은 철학적 모더니즘과 달리 수직적 가치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가치들의 본원이 무엇이며 어떠한 특질을 지녔는지 실증하는 작업보다 먼저 요구되는 것이 있다. 이러한 가치들이 어째서 형성되고 유지되었는지 그 사상사적 배경을 우선적으로 탐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미셀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의 중대한 발언을 음미해야 한다.
사상사의 주요 책무는 다음과 같다. 즉, 인류는 그들이 누구이며, 그들이 무엇을 하고, 그들이 사는 세계가 어떠한지에 대한 문제들과 관련된 조건들을 정의하는 것이다.
윗글에서 미셀 푸코는 사상이란 인류가 사는 세계의 조건을 정의하는 작업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모더니티 역시 모더니티가 발생했던 세계의 조건,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그 조건이 무엇인지 먼저 물어야 한다. 앞서 언급되었던 1978년도 「크로니클 오브 하이어 에듀케이션」의 기사는, 모더니티를 형이상학의 세속화라고 규정하고 있다. 형이상학은 세계의 제1원인을 추론해가는 학문이다. 결국 신성(deity)을 추구한다. 그러나 실체(reality)를 규정하는 일을 과학에게 이양했을 때, 세계의 본질 규명은 거인 과학자의 어깨에 올라타야 했다. 그리고 예술이 모더니티의 신념을 받아들였을 때, 예술은 본질주의의 포커스에 맞추어 세계를 인식해야 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포커스(focus)는 단순히 초점(焦點)만을 뜻하지 않는다. 포커스의 라틴어는 ‘가정의 난로(domestic hearth)’라는 뜻을 지닌다. 그런데 난로의 주인은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이다.
우리는 누구나 어렸을 때 집안의 불에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그것이 난로이든지 화로이든지 부뚜막이든지 어린 시절의 불은 꿈 자체이다. 마치 나방처럼 불에 다가서는 우리를 막은 것은 아버지이다. 손을 불 속에 집어넣을 때면 어김없이 막대기로 손을 내리쳤고, 불 속을 향해 뛰쳐 갈 때면 목덜미를 잡았다. 나중에 우리가 자라고 나서 아버지의 성냥을 훔쳐서 야외에 불을 피운 경험이 있을 것이다. 불의 절도는 좌절된 꿈의 보상이기 때문이다. 불을 피우고 우리는 모두 아버지의 불 다루는 솜씨와 나의 솜씨를 비교했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Promêtheus)는 아버지 제우스(Zeus)로부터 불을 훔쳐 아버지의 전능함과 자신의 능력을 비교하다 형벌에 처한다. 프로메테우스의 어원은 먼저를 뜻하는 ‘pro-’와 생각하다는 뜻의 ‘mêtis’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는 예술가이며, 예술가는 먼저 생각하는 일에 사활을 건다. 그러나 최초의 조상이자 아버지인 제우스를 넘어설 수 없다. 단지, 적법성과 적자(嫡子)의 조건이라는 이름의 유산을 상속받을 수 있을 뿐이다.
모더니즘 회화는 최초로 평면성의 중요성을 파악해낸 세잔(Paul Cézanne, 1839-1906)으로부터 출발한다. 따라서 우리는 세잔에게 제우스의 자격을 부여할 수 있다. 우리는 세잔 이후에 고흐를 보며, 고흐 이후에 피카소를 본다. 피카소 이후에 폴록을 보며 폴록 이후에 바넷 뉴먼과 마크 로스코를 본다. 우리는 수많은 회화가를 보게 되지만, 아버지 제우스 없이 태어난 프로메테우스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아무리 앤디 워홀이고 게르하르트 리히터일지언정 아버지 없는 예술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더구나 우리가 이 시간을 통해서 알고자 하는 대상은 서구 모더니티의 기원과 양상이 아니다. 바로 우리의 모더니티를 알고자 한다.
앞서 언급되었던 나이지리아 큐레이터 오쿠이 엔위저는 각 대륙의 모더니티에 브랜드를 수여하면서 동아시아의 모더니티를 앤드로모더니티(Andromodernity)라고 명명했다. 안드로(andro-)는 남성을 뜻하는 희랍어 명사 아네르(anēr, ἀνήρ)에서 나왔다. 아네르는 다 자란 성인 남성을 뜻하기도 하면서 남편(husband)을 뜻하기도 한다. 오쿠이 앤위저는, 모더니티가 본래 가부장적 질서의 산물이기도 하거니와 가부장적 질서가 유달리 동아시아에서 심화하여 발전되었던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Ⅱ. 동아시아의 예술 인식과 그 계왕(繼往)으로서의 현대
명대에 항목(項穆, ?-?)이라는 사람이 있다. 16세기 중반 즈음에 태어난 사람이다. 항목은 그의 저서 [서법아언(書法雅言)]을 통해서 문자를 쓰는 사람이 어떠한 사람이냐에 따라 문자 형상의 미추와 공졸(工拙)이 나뉘고, 이에 따라 중화(中和)와 광견(狂狷)을 중심으로 다양한 비평적 논의를 시도했다. 열여덟 장으로 이루어진 [서법아언]의 첫 장은 「서통(書統)」이다. 여기서 통(統)이라는 말은 정통(正統)의 계승(legitimate succession)을 뜻한다. 동아시아 문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의제가 바로 계통의 문제이다. 왕위 계승과 국가의 문제에서 정통(正統)이 있고, 유가 도학에서 도통(道統)이 있다. 문장에서 문통(文統)이 있는가 하면, 예술에서는 서예에서 서통(書統)이 있고, 그림에서는 정파론(正派論)이 있다.
그렇다면 동아시아 사상에서 중요한 통(統)의 문제는 무엇과 관련하는가? 이 문제는 항목의 [서법아언]의 「품격」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품격」 장에서 항목은 정종(正宗) 관념에 대해 논의한다. 정종이란 예술의 최고경지를 뜻한다. 항목은 정종의 예시로 왕희지(王羲之, 307-365)의 글씨를 손꼽는다. 정종은 진선진미(盡善盡美)를 실현한 것을 말하는데, 왕희지가 그 경지에 다가섰다는 것이다. 그 구체적 사항으로 주로 세 가지를 꼽고 있다. 우선 왕희지는 회고통금(會古通今)을 이룬다는 것이다. 즉, “옛날과 지금의 모든 글씨를 섭렵해서 하나로 꾀어낸다.” 둘째, 불격불려(不激不厲)하다는 것이다. 즉, “격하지도 않고 어그러지지도 않는다.” 중화(中和)를 이루었다는 뜻이다. 셋째, 계왕개래(繼往開來)했다는 것이다. 즉, “과거를 이어 미래를 열었다.” 항목은, 맹자가 공자를 평가하며 사용했던 집대성(集大成)이라는 말과 [중용]의 핵심개념인 시중(時中), 주희가 “옛 성인을 이어 미래의 학문을 연다[繼往聖, 開來學].”라고 말했던 부분을, 논의의 중심 개념으로 끌어낸다. 따라서 항목은 과거의 문화적 전범을 통섭하여 현재의 시변(時變)을 모두 고찰해서 미래를 여는 예술을 가리켜 정종이라고 했다.
동아시아에서 이러한 예술 인식은 더욱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다. 예를 들면, 북송시대의 시인 강기(姜夔, 1155-1221)는 예술의 지극한 경지는 정신과 통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뜻을 피력했으며, 원나라의 서예가 성희명(盛熙明, 1281-1347)은, 서예란 마음이 움직이는 흔적이 드러난 것이기에, 마음속에 쌓인 덕의 기운이 손에 의한 운필로 표현되는 예술이라고 정의했다. 시간이 지나 청나라에 오면 유희재(劉熙載, 1813-1881)가 “예술이란 도가 드러난 것이다.”라고 하여 예술이 갖는 진정한 의미를 도와 연관 지어 정의했다. 나아가 유희재는 “글씨란 심학(心學)이고, 글자를 옮긴다는 것은 뜻을 옮긴다는 뜻이다.”라고 하여 심화(深化)된 차원의 예술은 심학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동아시아의 예술 인식에서 가장 고차원적 개념은 도(道)와 마음[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도와 마음에 대하여 이야기해왔다. 그러나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 특정하지 못한다. 동아시아의 예술은 주로 다음에 등장하는 세 가지 차원과 관련하여 예술을 인식해왔다.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은미하니, 오직 정밀하고 한결같이 해야만 진실로 그 중을 잡을 것이다.
솔개는 날아 하늘에 이르는데,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논다. 즐겁고 화평한 군자여, 어찌 인재를 기르지 않으리오.
공자께서 냇가에 계실 때 말씀하셨다. “흘러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으로 쉬지 않고 흐르는구나!”
첫 번째 글은 [서경(書經)] 「대우모(大禹謨)」에서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전수했다는 심법이다. 우리의 마음은 외물[物]에 쉽게 유혹되어 인심(人心)으로 흐른다. 이를 바르게 붙잡아 도심(道心)의 중(中)을 유지해야 한다. 동아시아의 예술은 외물에 흔들리지 않는 도심을 얻는 여정 속에서 꽃피웠다. 두 번째 글은 [시경(詩經)]에 수록되어 있는 「한록(旱麓)」이라는 시로서, 하늘에 솔개가 날고 물속에 고기가 뛰어노는 것이 자연스럽고 조화로운데, 이는 솔개와 물고기가 저마다 나름의 타고난 길을 가기 때문이라는 세계의 진리를 상징하고 있다. 인간의 길 역시 타고난 길을 가야하며, 그 길이란 바로 도심을 찾는 과정이다. 세 번째 글은 [논어(論語)] 「자한(子罕)」 편에서 공자가 흐르는 냇가 위에서 흐르는 물을 바라보고 탄식한 장면이다. 누가 냇물을 쉬지 않고 흐르게 하는지 몰라도 그것의 흐름은 멈추지 않는다. 자연, 나아가 우주에 성(誠)이 있다면, 우리의 본성에도 성(誠)이 있을 것이다. 동아시아 예술가들은 이 세 가지를 기억하며 창작에 임했다.
따라서 당대(唐代)의 장회관(張懷瓘, ?-?)은 “글씨를 깊이 아는 사람은 신채(神采)만을 보지 글자의 형태[字形]을 보지 않는다.”라고 말했으며, 동진(東晉) 시대의 왕희지는 “천태자진(天台紫眞) 선생께서 내게 말씀해주셨다. ‘그대가 비록 지극할지라도 아직 완선(完善)에 이르지 못했다네. 글의 기운이란 반드시 도(道)에 도달해야 하는데, 그것은 혼원의 이치와 같은 것이라네.’”라고 말했다. 이 두 사람의 논의는 한대(漢代)로 거슬러가 양웅(揚雄, 53B.C.-18A.D.)이 “글씨란 마음의 그림이다.”라고 말했던 심화(心畫)라는 개념의 연장선에 불과하다.
말이란 그 마음에 통달할 수 없고, 글이란 그 말에 통달할 수 없으니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오로지 성인만이 말의 깨침을 얻고 글의 요체를 얻는다. 밝은 태양에 비추고 강물에 씻은 것 마냥 밝고 맑아서 성인을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얼굴을 서로 대하고, 말로써 서로 대적하여 마음속에서 서로 하고자 하는 바를 이리저리 굴려서, 여러 사람의 떠들썩한 분노를 통하는 것은 말과 같은 것이 없다. 천하의 일을 두루 다스리고, 오래된 것을 기록하고, 먼 것을 밝힘에 오랜 옛적의 흐린 것을 현저하게 드러내고, 천 리의 사리에 어두운 것을 전하는 것은 글만 한 것이 없다. 그리하여 말은 마음의 소리이고 글은 마음의 그림이다. 소리와 그림이 밖으로 나타나면 군자와 소인이 보이는 것이다. 소리와 그림이라는 것은 군자와 소인의 정(情)을 움직이는 까닭이기 때문이리라.
윗글에서 양웅은 말[言]을 심성(心聲)이라 규정하고 글[書]을 심화(心畫)로 규정하면서 최종적으로 군자와 소인의 학식 여부, 정감표현의 적절성, 판단력, 인품의 고하(高下)로써 서여기인(書如其人) 내지 서류기인(書類其人)의 결론에 이른다. 글과 그림은 마음의 표현이며, 이는 그 사람의 수준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동아시아에서의 예술은 곧 그 사람의 인품 그 자체를 판단하는 표지(標識)에 다름 아니다. 즉, 동아시아의 예술에 대한 사유는 구체적으로 형으로 드러난 소연(所然)의 세계보다도 행간에 숨어있는 근원적 원리, 즉 도리의 원천으로서의 소이연(所以然)의 세계에 대한 이해를 요구했다. 이러한 동아시아의 예술 인식은 조선조에도 반영되어,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 간재(艮齋) 이덕홍(李德弘, 1541-1596),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1711-1781)의 예술 인식과 정확하게 부합된다.
이상으로 보았을 때 동아시아 예술은 세 가지 중심사유로 발전해왔다. 동아시아의 예술 사유는 첫째, 1) 계통의 성립을 중시했다. 즉, 서통(書統)이나 정파(正派)와 같은 정종(正宗) 의식을 매우 중시했다. 정종의 자격은 회고통금(會古通今)하여 계왕개래(繼往開來)하는 작가에게 수여된다. 둘째, 2) 동아시아의 예술은 심학(心學)의 예술이다. 심학의 예술은 도리[道]가 무엇인지 찾아가는 과정으로서의 예술이다. 주로 요순(堯舜) 사이에 오갔던 16자 심법과 관련되며, [중용]의 시중(時中), [시경]의 연비어약(鳶飛魚躍), 공자의 서자여사부(逝者如斯夫)의 진리를 체화하는 과정과 관련된다. 셋째, 3) 글씨, 또는 그림은 마음의 그림이어야 한다. 그림은 그것을 그린 사람의 모든 수준, 판단력, 학식, 인품을 그대로 드러내는 거울이다. 따라서 그림은 그 사람 자체이다. 이 세 가지 중심사유는 서구 모더니티에서 요구하는 1) 계통 의식, 2) 평면성을 찾아 나아가는 본질주의의 철학성, 3) 스타일(style)은 그 사람 자체라는 논의와 일맥상통한다. 따라서 한국 모더니즘 회화는 서구 이념의 단순한 이식이 아니라, 유구하게 흘러서 우리에게 체화되었던 예술 인식의 현대화라고 볼 수 있다. 이에 최명영(崔明永, 1941-) 작가는 통찰력 있는 혜안을 제시한다.
미국의 미니멀리즘은 지향성, 즉 작가가 세계에 자신을 표명하는 태도(attitude)를 중시한 것입니다. 일본의 모노하는 사물과 사물 사이의 관계(relation), 나아가 나와 사물 사이의 관계를 조응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단색화는 과정(process)의 통찰 속에서 작품이 탄생합니다. 과정은 사유이면서 수양입니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프로젝트입니다. 자신을 화면에 일치시켜 사람과 그림이 둘이 아니라는 진리를 얻으려는 치열한 과정입니다. 이 과정에서 정신과 도리[道]가 모두 잉태됩니다.
최명영 작가는 미국과 일본, 우리나라가 공유하고 있는 평면적 물성 회화의 행간에 자리하고 있는 본질적 차이에 대해서 간명하게 요약해준다. 본질적 차이는 정신성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미니멀리즘 미술은 1959년에 태동한 것으로 파악되지만, 1966년 뉴욕의 유대미술관(Jewish Museum)에서 열린 「기초적 구조(Primary Structures: Younger American and British Sculpture)」라는 전시회가 앞으로 미술사를 잠식할 미니멀리즘의 전면적 신호탄이 된다.
이 전시회에는 주디 시카고(Judy Chicago, 1939-), 피터 포라키스(Peter Forakis, 1927-2009), 댄 플래빈(Dan Flavin, 1933-1996), 엘스워스 켈리(Ellsworth Kelly, 1923-2015), 리처드 반 뷰런(Richard Van Buren, 1937-), 아이삭 위트킨(Isaac Witkin, 1936-2006), 칼 안드레(Carl Andre, 1935-), 마이클 볼러스(Michael Bolus, 1934-2013), 도널드 저드(Donald Judd, 1928-1994), 로널드 블레이든(Ronald Bladen, 1918-1988) 등이 참여했다. 이론가 힐튼 크레이머(Hilton Kramer, 1928-2012)는 이 전시회에 대하여 뉴욕 타임즈에 세 차례 이상 기고하면서 “새로운 시대의 미학은 우리에게 달려있다.”고 발언했다. 미국 최고의 큐레이터로 평가받는 키너스톤 맥샤인(Kynaston McShine, 1935-2018)은 이 전시회를 가리켜 “이전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전시회는 당대 최고의 미술사가 마이어 샤피로(Meyer Schapiro, 1904-1996) 역시 기획자로 참여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미니멀리즘은 가장 기초적 구조(primary structures)를 찾아서 전대와 완전히 절연하여 새로운 미학을 창출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조직적인 기획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전시회로부터 이론가이자 작가인 로버트 모리스(Robert Morris, 1931-2018)는 반복적으로 양산되는 미니멀리즘의 작품들을 바라보면서, 미니멀리즘 작품이 여타 다른 작품과 구별되는 특성을 가리켜서 미니멀리즘이 지닌 ‘연쇄성(seriality)’이라고 진단했다. 반복적 패턴의 사용, 공정 시스템을 도입해서 작품을 양산하는 방식이 바로 연쇄성이라는 것이다. 1966년 즈음에 화단의 주류가 되었던 도널드 저드는 자기 작품 세계의 특징을 가리켜 연쇄적 태도(serial attitude)라고 불렀다. 미니멀리즘의 본령은, 최명영 작가의 말 그대로, 세계에 대한 태도와 관련된다. 이로써 최명영 작가의 혜안은 입증된다.
일본의 모노하(もの派, Mono-ha)의 경우 1970년 2월 「발언하는 신인들: 비예술의 지평으로부터(Voices of Emerging Artists: From the Realm of Non-Art)」라는 전시회에서 전기를 맞이한다. 야외의 설치작품과 건물 안의 설치작품으로 구성되었던 이 전시회는 가공되지 않은 자